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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정태우 & 안재모씨의 인연

테크인코리아 2008. 5. 18. 12:13

1. 【KBS 용의 눈물 , 1996~1998】→ 이복 삼촌과 조카로 첫 인연이 시작되다

 

무안대군 방번 (12세 ~ 18세) (1381 ~ 1398) : 태조 이성계의 일곱번째 아들로 신덕왕후 강씨 소생,

극의 주인공 이방원의 이복동생이다. 아버지 이성계가 권력을 장악하여 공양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조선을 개국하면서 무안군으로 봉해져 왕비가 된 어머니 신덕왕후,

누나 경순공주,친동생 방석과 더불어 태조의 자녀들중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대신들의 뜻에 가려져 엄연히 자신이 중전인 신덕왕후의

큰아들인데도 친동생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동생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것은 속으로는 매우 분했고 원망도 많았지만

오히려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않고 세자가 되어 궁에서 답답해하는 방석을

도와주면서 오히려 저하께서는 잘 하실수 있다며 후원자 노릇도 톡톡히 했다.

기방으로 몰래 변복을 하고 방석을 데려갔다가 심한 꾸중을 듣기도 한다.

어머니 신덕왕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뒤 신덕왕후를 너무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로하고 세자 방석을 더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호시탐탐 보위를 노리고 난을 일으킨 이복형 정안대군 방원에게

18세의 젊디 젊은 어린 나이에 동생 방석과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며

어머니 신덕왕후가 후궁으로 강등됨에 따라 그도 서자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의 억울한 죽음에 시호와 휼전이 추증되었으며 수백년이 흘러서야

마침내 무안대군으로 추증된다.

 

충녕대군 도 → 제 4대 세종 (14세 ~ 26세)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4남 4녀중 셋째 아들, 후의 해동성군이라 불리우는 4대 임금 세종이다.

14세에 훗날 소헌왕후가 되는 심온의 딸 심씨와 혼례를 올렸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너무도 좋아하고 성품이 어질며 효성이 지극해 태종이 무척이나

아꼈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호평이 끊이지 않았고 오죽하면 태종이

허구한날 말썽이나 일으키는 맏아들인 세자 양녕대군을 볼때마다 '그 아이가

장자로 태어났다면...'이라면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남편 태종의 철통같은 외척 경계 때문에 넷이나 되는 친정 남동생들을 잃고

친정마저 풍비박산나는 아픔을 겪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 원경왕후를 큰형 세자

제,작은형 효령대군,막내동생 성녕대군과 함께 위로하였다.

평소에 몸이 허약하던 8살 아래의 막내 동생 성녕대군이 병으로 죽고

태종과 원경왕후를 위로하기 위해 효령대군과 함께 입궐한다.

더이상 왕위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피를 흘리는 군주가 되기 싫다는

글을 남긴 세자 제가 어떻게든 큰아들에게 보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마음에서

멀어져 끝내 폐세자가 되고 양녕대군으로 강등되면서 그가 새로운 세자로 선택받게

되는데 난 받을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나 어쩔수 없이 명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대례복을 입고 가던 길에 폐세자가 되어 대궐을 떠나는 양녕대군에게 부디 성군이

되라는 말을 듣고 양녕의 폐세자를 반대하는 황희가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자가 된다.

세자로 책봉된뒤 형제끼리 죽이고 죽이는 피의 참극을 벌이지는 않을것이냐는 어머니

원경왕후의 질문에 곤혹해하면서도 오히려 그럴 일은 없을거라 안심시키나

이제 물러날때가 됐다며 양위를 선언하는 태종에게 아직 세자로서의 도리를 다 익히지

못했으니 부디 거두어달라고 애원하나 끝내 아버지 태종의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세자가 된지 2개월만에 22세로 보위에 올라 해동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이 된다.

그러나 보위에 오르고 나서의 일들은 눈앞에 놓여진 가시덩쿨처럼 험난했다.

어머니의 친정 집안을 말살시킨뒤 한동안 잠잠하다싶었던 아버지 태종의

외척경계가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박은과 유정현의 음모와 더불어 중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이 역모에 연루되었다하여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그녀의 친정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왕비가 된지

얼마 되지않은 아내 소헌왕후에게 씻을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만다.

눈물을 머금으며 아내의 친정 어머니와 자매들을 노비로 만들고 정작 자신은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마음속으로 깊은 후회를 한다.

이를 뒤로하고 학문을 좀 더 높게 발전시키고 백성들을 위해 왕으로서

모든 힘을 쏟아 민심을 살피고 대마도 정벌을 감행하였다.

또한 광주에 있다가 말도 없이 사라져 태종의 걱정을 산 큰형

양녕대군과는 행동에 문제가 많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역모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며 좋은 형제애를 과시했다.

늙은 어머니 원경왕후가 눈물겨운 간병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난뒤 2년이

흘러서 1422년,26세가 된 세종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병이 든 아버지 상왕

태종의 걱정을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며 민심을 살폈다.

태종이 병들어 건강이 좋지 않을때에 박은도 몸이 많이 쇠약해있었는데

어의를 보내고 직접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자 유정현과 작심하여 내 아버지와

친정 식구들을 죽인 자인데 가지말라고 하는 소헌왕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거는 잊어야한다며 설득력을 보이기도 한다.

 

 

2. 【KBS 왕과 비 , 1998 ~ 2000】→ 유약한 임금 단종과 폭군 연산군으로 환생하다

 

제 6대 임금 단종 홍위 (12세 ~ 17세) : 병약하였던 아버지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12세의 어린

나이에 뒷받침을 해줄 정치 세력도 없이 보위에 오른날부터 그의 비참한 불행이 시작되었다.

작은 할머니뻘되는 혜빈 양씨와 작은 어머니뻘되는 귀인 홍씨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지만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만큼 뒤에서 수렴청정을 해줄 대비도 없어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정치를 봐줬는데 점점 수양대군의 그늘에

밀려 임금으로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결국 빼앗기듯 숙부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나

대궐에서 쫓겨나 아내 정순왕후 송씨와 생이별하여 영월로 유배온다.

끝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보위를 빼앗은 숙부 세조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제 10대 연산군 융 (19세 ~ 31세) : 얼굴만 잘생긴 신인 연기자로만 여겨졌던 안재모씨를

연기파 배우로 만든 최고의 배역, 생모의 존재를 모르고 성장해 할머니 인수대비와 궐안의

모든 내시들과 상궁,궁녀들에게 따돌림받고 평생을 쓸쓸하게 자란 것을 짐작하게 하고

폐비가 누구냐 자원에게 묻는 장면이 오싹...소름이 끼쳤다.

어쩌다 생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나 오히려 입을 다물고 인수대비를 정중히 대한다.

아버지 성종이 병석에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19세의 나이에 보위에 오른다.

연산군으로 분한 안재모씨의 연기 하나 하나가 흠잡을것이 없었고 특히 폐비의 피묻은

적삼을 보고는 광기에 휩싸여 대비전에 쳐들어가 적삼을 보여주고는 폐비 윤씨 폐출에

공모했다하여 선왕의 두 후궁 정귀인과 엄귀인의 머리채를 끌고 가 잔인하게 고문을

하는 장면 또한 베스트다. 180회 마지막에 안양군과 봉안군을 끌고 가 문을 발로 차고

네가 그러고도 임금이라고 할수 있냐며 호통치는 인수대비에게 "죄인의 아들이니 임금이라

할수 없지요!"라며 술을 내미는 장면 또한 소름이 덜덜 끼치는 대목이었다.

 

 

3. 【SBS 왕과 나 , 2007 ~ 2008】→ 8년만의 재회,내시와 폭군 임금으로 ...

 

정한수 (가공인물) : 양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양물을 자르고 내시가 되었다.

이와 함께 판내시부사 조치겸의 이복동생이 되었고 노내시의 양자가 됨.

주인공 김처선을 사사건건 괴롭히고 대립하여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한명회와 결탁해

중전 소화를 독살하고 엄숙의를 중전으로 올리기 위해 독살을 시도하고 후에도 끝없는 음모를 꾸민다.

소화가 폐비 윤씨가 되어 사가로 나간뒤에도 원자에게 보낼 서찰을 바꿔치게해

사약을 내려 죽게까지 하는데 일조를 해 인수대비,정귀인&엄귀인과 함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어 대궐에서 쫓겨나 도성밖에서 한동안 거지로 처량하게 살아 거지들에게

죽을뻔한 것을 도금표가 구해주기도 했으나 내시로 복직시켜달라 애원할수록 비참해진다.

폐비 윤씨에 대한 진실들을 밝히라는 새 임금 연산군의 명령을 받은 내시 자원에게 발견되어

내시부로 복직시켜주겠다는 유혹에 대궐로 오랜만에 들어오게 되고 연산군 앞에서 폐비의 대한

일들을 전부 밝혀 그가 훗날 폭군이 되는 불씨를 던진다.

조치겸의 명으로 잘못을 깨닫고 목에 칼을 대고 자살한다.

 

연산군 융 (19세 ~ 31세) : 그동안 유약하고 힘없어 일찍 죽는 역만을 해오신 정태우씨의

유약 이미지를 잊게 한 최고의 배역, 연산군으로 분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여인천하의 착한

임금 인종과 대조영의 아들 검이는 확실히 사라져있었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는

광기에 차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선왕의 후궁 정귀인과 엄귀인을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고

대신들까지,이미 죽은 자까지 부관참시하는 연기는 일품이었다.

마지막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쓸쓸히 홀로 귀양을 떠나는 장면이 측은하고 불쌍했다.

출처'용의 눈물'부터 시작해 '왕과 비'와 '왕과 나'까지, 정태우 & 안재모씨의 인연(kisara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