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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관음증…섹스와 정치의 절묘한 합궁

테크인코리아 2009. 2. 16. 19:01

동성애…관음증…섹스와 정치의 절묘한 합궁

[이허브] 고려말, 원나라의 정치적 압박과 후사문제로 곤경에 처한 왕(주진모).
심지어 정체불명의 자객들이 백주 한낮에 기습을 해와 목숨을 위협한다. 

왕은 최측근인 건륭위 수장 홍림(조인성)에게 자신을 시해하려 한 세력들을 조사할 것과 함께 충격적인 밀명을 내린다.  바로 왕위를 이을 원자를 얻기 위해 홍림에게 왕후(송지효)와의 대리합궁을 명한 것이다. 

왕의 명령이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놓을 홍림이지만 어찌할 바 모르고, 왕후 역시 왕의 보위를 위한다지만 원치 않는 합궁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긴장과 욕망이 교차하는 속에서 첫날밤을 치르는 홍림과 왕후, 그리고 그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왕. 허나 그날 밤을 계기로, 세 사람의 운명은 예상치 않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데
… (중략)     

타이틀 명 '쌍화점'은 고려 25대 충렬왕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다. 쌍화(만두)를 파는 가게에서 벌어지는 연인들의 난삽한 밀애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조선시대 성종 때 유교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해서 '남녀상열지사'라고 취급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내용은 선정적이다 못해 도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왕과 홍림 사이의 동성애 장면도 그렇고 홍림과 왕후가 연이어 벌이는 섹스 신은 관객의 탄성을 불러올 만큼 대담하다. 

더욱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꽃미남 조인성과 주진모 그리고 단아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송지효가 거의 전라로 열연을 펼쳤다. 아마도 이제껏 보았던 방화 중에서 '쌍화점' 만큼 필자에게 말초적인 자극을 안겨준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공민왕 때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함으로써, 관객에게 한층 더 공감대를 안겨줬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공민왕도 후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동성애에 빠져들기도 했다.
 
영화에서 왕비의 합궁 장면을 엿보듯이, 공민왕도 남의 동침 장면을 보는 걸 즐기곤 했다. 물론 남의 정사 장면을 봤다고 해서 영화와 실제 역사 속 왕의 행위를 똑같이 간주해선 안될 것이다. 

영화에선 보위를 든든히 하기 위해 그리고 어차피 남의 핏줄이라면 자신이 총애하는 측근이자 연인인 홍림의 아이를 얻음으로써 위안을 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왕은 단순히 합궁에 그치지 않고 두 남녀 간에 정분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면서 엿보았다.
 
이는 '쾌락'과는 거리가 먼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공민왕이 다른 사람의 정사 행위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엿보는 행위는 전형적인 '관음증'에 해당된다.

여기서 후사를 둘러싼 비극의 원인으로, 영화에선 정인으로 총애받던 홍림이 왕을 버리고 왕비를 연모했기 때문인 반면, 역사에서는 개인적 질투와 증오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짙다. 즉 자제위 소속의 홍윤이 익비(益妃)와 통정하여 그녀를 임신케 하고, 이를 환관 최만생이 공민왕에게 고한데서 발단이 된다.
 
왕은 익비가 낳을 아이를 자신의 후사로 삼기 위해 홍윤과 최만생을 살해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나 최만생이 선수를 쳐서 홍윤 등과 공모하여 공민왕을 시해한 것이다.

그럼 즉위 초부터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반원정책을 펼치던 공민왕이 정사를 소홀히 하고 실정을 거듭한 끝에 신하에게 목숨을 잃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무척이나 사랑했던 왕비인 노국공주가 1365년(공민왕 14년)에 난산(難産)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친히 왕비의 진영을 그려 벽에 걸어둘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그 슬픔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던 공민왕.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 이상으로 왕비를 사랑했던 것 같다.

역사를 논할 때 "만일 … 했더라면"처럼 무의미하게 들리는 말도 별로 없다. 그러나 집권 초부터 과감한 사회경제 개혁과 대외정책으로 백성들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왕이었기에 하는 가정이다. 

만일 노국공주가 죽지 않고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으면, 공민왕은 어떠한 정치를 펼쳤을까. 훌륭한 정치인 옆에는 대체로 뛰어난 혹은 건강한 내조자가 있다.(예외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링컨의 부인은 악처로 소문났다.)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는 속담도 있다. 아내 건강에 대한 배려야말로 결국 남편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속보이는 계산된 말일까.           영화평론가 / 한국성문화콘텐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