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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도 없이 내 얼굴이 TV에? 소송하면 이길까?

테크인코리아 2009. 6.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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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이용한 과속 단속이 시작된 초창기,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 한 토막. 부인에게 '나고야'로 동료 남직원과 출장을 간다고 했던 중년의 남자, 며칠 후, 집으로 '하코네'에서 찍힌 과속 단속 통지서가 날아든다. 운전석 옆 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다.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다. 재산이 꽤 많았던 중년의 불륜남은 과속 단속 통지서의 사진 한 장 때문에, 거액을 부인에게 위자료로 지불하고 이혼 당한다. 열 받은 이 남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불륜남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는 초상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이후, 과속 단속 통지서의 사진에는 누가 타고 있는지 전혀 식별할 수 없도록 음영 처리가 시작됐다. 지금, 우리나라 역시 과속 단속 통지서에는 동승자는 물론, 운전자도 누군지 식별할 수 없도록 가려진 채 발송된다.

자, 그렇다면, 중년의 불륜남이 부인에게 대구로 출장을 간다고 말했는데, 광주의 무등 경기장에서 웬 젊은 여성과 야구를 관람하는 장면이 TV 중계 화면에 잡혔다고 치자. 부인이 TV 속 남편의 모습에 경악해서, 이혼 소송을 걸었고, 막대한 돈을 위자료로 날린다면? 불륜남이 위 일본의 사례처럼 초상권을 인정받아 방송사와의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승소할 수 없다. 본인 허락없이 초상권을 침해 받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냐고? 자, 차분히 생각해보자. 본인 허락이 있어야만 방송이 가능하다면, 야구 중계에 나선 방송사가 야구장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최대 2~3만명)에게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방송 중계가 예정된 모든 경기장 출입구는 동의서에 서명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 될터. 공공의 이익을 해칠 뿐만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런 소송에서는 본인의 과실을 따지게 된다.

무슨 과실? 불륜남이 야구장에 입장하면서 TV 중계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본인 과실을 묻게 된다. 몰랐다고 우기면 되지 않느냐고? 야구장에 설치된 그 많은 카메라와 중계 스텝을 분명히 봤을테니,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TV 중계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어쨌든, 부인 몰래 애인과 야구장 데이트를 즐기던 불륜남은 결국 패소하고 만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란, TV 중계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계권도 없는 방송사 혹은 개인이 불륜남의 사진 또는 동영상을 몰래 찍어 유포한 경우라면 초상권 침해에 대해 부분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불륜남과 애인이 야구장이 아니라 거리를 걷다가 방송사 카메라에 찍혀 TV에 나왔다면 어찌 될까?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 경우,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권리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따라서, 누가 승소한다고 딱부러지게 얘기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조금 다른 경우라면?

성매매를 고발하는 뉴스라고 치자. 성매수자를 비판하며, 안마시술소 앞 거리를 오가는 남성들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모자이크가 빠져있다면? 이런 경우, 화면에 등장하는 남성이 주변인들에게 오해를 받게 돼, 정신적, 금전적 손해를 입을 확률이 높다. 만약,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방송사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 더구나,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개인의 초상권이나 저작권 같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판결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물며,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방송사도 이럴진데, 개인이 누군가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경우라면 손해배상금을 물어 줄 각오를 해야 한다.

요즘 블로그나 미니 홈피에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한 사진들이 꽤 많다. 겉으로 보기에, 사진 속 인물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장면처럼 보이는 사진일지라도, 일본의 불륜남처럼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드문 경우라고 해도,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되니, 거액의 합의금을 내야할 지도 모른다. 부디, 남의 초상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마시라.


* 사족 : 이런 경우도 있었다. 모 방송사에서 유명 소설가의 인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소설가의 허락하에, 앨범 속 사진을 촬영해 방송했다. 그런데, 그 사진을 직접 촬영한 사람이 저작권 침해라며 해당 방송사를 고소했다. 사진 촬영자로부터 사진을 선물로 받아 앨범에 보관했던 소설가의 간곡한 읍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촬영한 이는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고, 결국, 방송사는 패소가 예정된 시점에서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건네야 했다.


posted by PD the ri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