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 도종환 산문집 中
나에게 끝없이 무엇을 달라고 하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에게 메달리기만 하는 사람
내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
나에게 쉬지 않고 일거리를 맡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들로부터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영원히 이들이 없는 곳에서는 나도 살아 있을 수 없다.
세상이 너무 추하고 더럽다.
썩지 않은 곳이 없고 썩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곳곳이 부패해 있고 역한 냄새로 고개를 들기 어렵다.
들추어 내는 곳 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차라리 눈, 코, 귀를 막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석가여래는 오탁(汚濁)이 있는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오탁악세(汚濁惡世)를 찿아 다니며 법을 설하셨다.
그 속에서 수행을 완수하여 화광여래가 되는데
그 화광여래의 국토는 먼지가 하나도 없는 이른바 이구(離垢)라고 한다.
애당초부터 평탄하고 청정하며 아름답고 쾌적한 곳에
사는게 아니라 더럽고 때묻고 탁한 곳에서 무한 겁 동안
정진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화광여래가 되시는 것이다.
우리는 땅이 유리로 되어 있고 금실로 바둑판처럼
장식되어 있으며 길가에는 보석 나무가 있고 칠보의 꽃과
과일이 열리는 화광여래의 국토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대도 나도 이런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먼지 하나 없는 곳에선 그대도 나도 살 자격이 없다.
먼지도 있고 빛도 있는 곳에서 빛과도 어울리고 먼지와도 하나 되어 섞여 사는 것이다.
그대와 내가 쌓았던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지고 난 뒤
잿더미 속에서 불티 하나만 보아도 저주가 쏟아지지만
그 불씨마저 없는 곳에선 누구도 살아 있을 수 없다.
나를 향한 그대의 분노가 나를 다 태우고 남는다는 걸 알지만
미움의 불길과 용서의 강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선
벌레 한 마리도 살아 남을 수가 없다.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내게 오는 복도 너무 넘치면 화가 되고
너무 모자라면 궁핍하게 마련인데 홍수가 되어 넘치거나
가뭄이 되어 우리 생을 다 망치게 하고 물러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물줄기조차 없는 곳에서는 그대도 나도 꽃 한송이도 살 수 없다.
먼지 묻은 나날과 불길과 폭풍우와 해일이 있는 곳이라서 그대와 내가 사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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