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예감/고향 ♨ 어릴적

'장군이요'

테크인코리아 2007. 9. 12. 18:13
나 어릴적, 나는 어른신들께서'너 이담에 커서 뭐 될래'하고 물으시면,

나는 주저없이 '장군이요'라고 대답했다.

 

을지문덕장군, 강감찬장군, 최영장군, 김종서장군, 이순신장군...

취학하기 전부터 읽었던 역사속의 장군들에 대한 위인전 영향일까,

아니면, 군사정권 그 폼데나는 장군정치의 영향일까?

 

우리 고등학교는

HS장군이 이사장이시고, JMH장군이 교장선생님 이셨다.

 

3년동안,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6시기상, 구보, 체조, 태권도, 점호, 얼차레, 10시취침, 불침번...

3년동안, 정말 속된말로 뺑이쳤다.

그러나 규칙적이고 엄선된 식단,

그리고 냉난방이 빵빵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기에

고등학교 3년동안 키가 17센치미터 가량 자랐다.

어느때는, 학생이 학생이 아니었고,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다.

여름휴가 몇일전, 그리고 겨울휴가 몇일전에만 구타가 없었다.

왜냐하면 구타를 하면 엉덩이건 허벅지건 방망이 자국이 남으니까...

부모님들의 반응에 대한 염려덕분에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방학을 휴가라고 하였다.

 

언제나 욕조에는 밀대자루를 물먹이느라

욕조가 아닌 밀대자루 물먹이는 곳이었고,

초록 모포는 90도 칼직각을 내느라

연신, 양손으로 다듬어야만 했다.

장학생이 안되면 수업료를 내야하기에,

시험을 앞두고 열시 넘어서 화장실에서 쪼그려 공부하다가

학생장 선배님께 들켜서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에 피가 난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엔지니어가 되었다.

 

초등학교6년 중학교3년, 육군사관학교 가는것이 목표라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집안 사정상, 공고나와서 일찍 사회생활을 한것이 어쩌면 다행스럽다.

 

졸업후에, 은사님께 학창시절에 왜 그렇게 패셨냐고 여쭈니까,

제주도, 강화도, 울릉도, 충청도(내고향), 경기도, 강원도, 완도...

전국각지에서 모인 너희들이 그래야 향수병에 걸리지 않고

사고없이 무사히 학업에 전념할 수 있으니까 그러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는 구월달에 입시원서를 제출해서,

시월이면 합격여부 및 장학생이냐 아니냐가 결정됐다.

1차 서류전형, 그리고 2차 필기시험에 떨어진 친구들은

연합고사를 치루어서 인문계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중학교3학년때, 큰 수해로 인해 사정이 어려워진 터라

우리학교에 합격하기위하여 정신집중하여 시험공부 하느라 호롱불아래서

완전정복8년간총정리 두꺼운책을 달달달 외운 기억이 난다.

장학생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을때 그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깡다구와 기백을 가르친 나의 모교를 사랑한다.

나에게 20여년이 넘도록, 앞으로도 평생토록 끈끈한 우정의 좋은친구들을

듬뿍 안겨준 우리모교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우리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기계2반 친구들은 청소년기 3년동안,

함께 기숙사 생활을 화끈하게 해서인지 너무나도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숲속의 하얀집' 나의 고등학교 3년, 기숙사 생활을 

자랑스러운 추억,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직할 것이다.

마치, 경쟁하듯 우리를 장작패듯 팻던

KKI 체육선생님, CSS교련선생님, 사감선생님(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매를 안들으셨던 분)

그리고 악명높던 학생장 선배님을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할 것이다.

 

은사님...선배님...이글 읽으시면, 우리 친구들 모이면 가끔 이런이야기 합니다.

지금 우리 친구들의 직업을 보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대한유화, 포스코, 교사, 공무원...

그리고 성실한 사업가 입니다.

경조사나 행사때는 전국각지에서 많은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은사님들께서 채찍과 사랑으로 저희를 가르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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